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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회 콜로키엄 안내 : 조선후기 사족가문 여성시인과 가족 내 문학활동

등록일 : 2015.11.30 조회 : 133

93회 콜로키엄 안내 : 조선후기 사족가문 여성시인과 가족 내 문학활동


안녕하십니까.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서

128일 화요일 오후 4시에 제93회 콜로키엄을 개최합니다. 장소는 규장각 1층 회의실(112)입니다.

이번 강연은 중국 연변대학교 한국학학원 교수로 계시는 이설화 선생님께서

조선후기 사족가문 여성시인과 가족 내 문학활동 :중국 명청시기 규수시인들의 경우와 비교하여

라는 주제로 발표해주실 예정입니다.

이설화 선생님께서는 중국 길림사범대학 중국언어문학학과에서 학부를, 중국 연변대학교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동대학원 조선언어문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으시고 현재 연변대학교 한국학학원 부교수로 계십니다.

아래에 발표 개요를 첨부하오니, 관심 있는 많은 분들의 참여 부탁드립니다.


조선후기 사족가문 여성시인과 가족 내 문학 활동

- 중국 명청시기 규수시인들의 경우와 비교하여 -

이설화(중국 연변대학교)

조선사회 가부장적 제도로 인해 여성들의 창작활동은 가족 내에 국한될 수밖에 없었으며 조선시대 여성시인들의 문학창작과 기록(문집)은 가족 내 남성의 역할과 갈라놓을 수 없다. 보다 개방된 사상을 가진 남성 문인의 주도와 지지 하에 여성을 포함한 가족 내의 문학 활동이 이루어지게 되고, 이로써 말미암아 얼마 안 되지만 소중한 여성시인들의 시문집이 전해지게 된다. 조선후기 가장 많은 시작품을 남겼던 여성시인 김호연재는 호방하고 활달한 성격의 소유자였던 아버지 김성달을 중심으로 형성된 친정의 문학활동을 통해 뛰어난 시적 재능을 연마할 수 있었으며, 서영수합과 홍유한당이라는 두 명의 여성시인을 탄생시킨 홍씨 집안 역시 가장인 홍인모의 주도 하에 이루어진 가정 내 창작모임이 활발하게 진행되었었다.

하지만 같은 시기 중국 명청시기 규수시인의 경우와 비교해 보면, 시인과 문집의 수량도 엄청난 차이를 보이겠지만 더 중요하게는 명청시기 규수시인들이 창작에 임하는 자세이다. 적극적으로 여성들의 문학창작을 이끄는 동시에 문집까지 내주면서 문명을 날리게 했던 명청시기의 풍토와 조선시대는 너무 다른 모습을 보인다. 우선 조선시대 여성들의 창작은 대부분의 경우,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나 형제, 남편의 권유로 그들의 문학적 흥에 부응하기 위해 문학창작에 가담했다는 것이며, 이러한 피동성이 강조되어 있다. 다음으로 여성들의 창작은 남성들이 입신양명을 위해 문학창작에 임하는 것과는 달리 취미정도에 그쳐야지 여자들의 부덕에 영향주어서는 안된다. 마지막으로 중국에서는 를 중시하는 전통이 강조되면서여성미를 판단하는 기준에 여성의 부덕과 함께 시적(예술적) 재능도 포함시킨데 반해 조선의 여성들은 시종일관 부덕을 유일한 여성미의 평가기준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키워드: 조선후기, 사족가문, 여성시인, 문학 활동

문의) 규장각 연구부 880-5505